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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내 심정을 말하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모르는 어린이가 너무 많구나"였다. 앞뒤의 내용을 모두 잘라 버린체 강조한 문단만 딱 넣어두면 그 부장 셋은 솔직히 바보 멍청이들이다.
그러나 어린이가 아니라면 생각을 좀 해보자. 태평로에 있는 대기업의 부장이라면 왠간한 중소기업의 사장 명함으로는 얼굴 보기도 힘든 사람이다(물론 그 대기업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기업이라면 말이다). 그 부장 3명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할 정도의 보고서라면 얼마나 중요한 안건이겠는가.
수천수백억이 걸린 문제일 수도 있고, 뒤에서 비웃고 있는 능력없는 당신이지만 마지막 기회를 줘야한다는 처절한 호소가 담긴 내용일 수도 있다.
예전에 그깟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내용이 탁월하니 누군가 끈기를 가지고 내 보고서에 담긴 보석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나말고도 전국에 100만명은 되더라. 그리고 그들 중에는 솔직히 나보다 나은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그 많은 이들 중에 일부 아니 극소수만이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디딤돌로 우뚝 서게 된다. 더럽고 치사해도 어쩔수 없는 정글의 법칙이다.
당연히 산돌고딕과 견고딕을 선택하는 문제가 중요하지는 않다. 결론을 어떻게 내리더라도 "폰트가 마음에 드네"같은 칭찬은 절대로 없다. 그러나 잘못 선정했을 때 감점요인은 분명히 된다.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불편한 형식의 보고서는 내용과 관계없이 점수를 깎아 먹고 시작한다. 그간의 경험으로 볼때 이런 부분까지 신경쓰는 부하 직원은 한 명도 못봤다. 자기소개서를 방가방가~로 시작하는데 보고서의 저런 부분은 신경 쓸리가 없다.
전옥표씨의 이기는 습관에 보면 임원 숙소에 공중파 채널이 잡히지 않는 걸 아무도 발견 못하고 자신이 찾아내서 밤에 기술자를 불러 고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떠는 것 같지만, 완벽이라는 것을 위한 것이 어떤 과정인지를 보여준다.
저주나 비꼼이 아니라 저런 것들을 우습게 생각하다가는 당신은 영원히 자신이 왜 뒤쳐지는지 절대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내용이든 형식이 됐든 자신의 손을 떠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완벽을 향해 집요하게 달려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 승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당신밖에 없어서 내 자리라고 안심하고 있을때 외부에서 누군가를 불쑥 데려다 당신 상관으로 만들 것이다.
이 바닥에는 절대 평가란 없고, 무조건 상대 평가만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자. 99점을 맞아도 훌륭하지만, 100점 맞는 놈이 나오면 그냥 2등일뿐이고 당신은 바로 잊혀진다. 물은 100도에서만 수증기가 된다. 99, 98은 그냥 물일뿐이다. 99에서 100까지가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추가로 들어간다해도 100이 되지 않는 이들은 그 기화의 순간을 영원히 모른다.
ps. 그렇다고 내가 야근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부장 셋을 우습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뿐이다.
